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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리뷰]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리뷰/기타 2017. 1. 27.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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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저자 및 책에 대한 소개

      영국판 원제는 'Essays in love'.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이 처음 쓴 책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스물다섯에 썼다. 그리고 내가 처음 읽은 알랭 드 보통의 책이기도 하다. 1인칭 시점에서 클로이와 연애하면서 겪은 일들과 그때그때 떠올랐던 생각들을 갈무리한 것이다. 후반부 이야기는 스포이므로 생략하겠다. 참고로 알랭 드 보통은 철학을 전공했고 현재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만약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굳이 이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그가 철학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연애소설이라기 보다는 철학서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처음엔 내가 책을 잘못 빌린 것인가 의심했다. 나만 그렇게 느낀 줄 알았더니 어떤 블로거는 이 책을 '꾸역꾸역 읽었다'고 하던데 책 중후반부를 읽으며 굉장히 공감했다. 역자는 "그가 평범한 일상에서 평범하지 않은 생각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만약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산다면 신경통으로 일주일만에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론 의도적인 단순함이 뇌를 쉬게 만드는 것 같다. 아무튼 이 책은 어렵다. 쉽게 읽히는 책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이 썼다고는 믿기 힘들만한 내용들이 많다. 그가 쓴 책들이 보여주듯이 그는 천재인 것 같다. 큰 감동을 주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연애소설이 지겹다면, 그리고 철학서를 읽을 자신이 있다면 한번 읽어봐도 좋다.

     

    침묵의 상대성

      "침묵은 저주스러웠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따분한 사람은 나 자신이 되고 만다."

      불편한 사람과 있을 때의 침묵은 마음마저 불편하게 만든다. 이때의 침묵은 깨야만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있을 때는 침묵마저도 편안하다. 이때의 침묵은 굳이 깰 필요가 없어진다. 따라서 침묵이 주는 느낌은 상대적이다. 혹자는 요즘 세대들을 '침묵에 익숙지 않은 세대'라고 평가했다. 과거엔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의 침묵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는데 요즘 세대는 침묵을 너무도 어색해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속단이라 생각한다. 앞서 말한 침묵의 상대성을 생각한다면 요즘 세대는 침묵을 어색해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침묵이 어색할 만큼 불편한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개인주의의 영향으로 그만큼 내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든 것이다.

     

    원래의 나와 네가 원하는 나

      "나는 열등감 때문에 나 자신이 아닌 인격, 나의 고귀한 동행자의 모든 요구와 암시에 반응하는 구애의 자아를 내세워야 했다.사랑 때문에 나는 클로이의 눈을 상상하고 그 눈을 통하여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클로이를 기쁘게 하려면 나는 누가 되어야 하나?" 나는 그렇게 자문했다. 그렇다고 극악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클로이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할지 계속 미리 예상을 하려 했을 뿐이다."

      정말 어렵게도 써 놨다. 원문 자체가 어려운 걸까 아니면 번역을 어렵게 한 것일까? 결국 열등감때문에 내 원래 모습이 아닌 상대방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는 내용이다. 공감가는 내용이다.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행동이기에 이것을 스스로 깨닫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나도 종종 지난 내 행동들을 뒤돌아볼 때 과연 그것이 내 본연의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사람들의 장단에 맞추기위한 가면이었는지 자문할 때가 많다. 사람들은 종종 이상과 현실을 착각할 때가 있다. 마치 심리검사를 할 때 현재의 내 모습이 아닌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에 체크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저자는 그 원인이 열등감에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함에 대하여

      "나의 사랑은 클로이가 소유한 모든 것, 아직 완전히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무한히 풍부해 보이는 삶의 물질적 기호들에 대한 매혹으로 나타났다. 일상적인 것이라도 특별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경이의 빛을 발산하기 마련이다. (중략) 전이의 한 형태이겠지만, 나는 그녀가 소유한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의 사소한 것마저 특별해질 때가 있다. 특별할 것 없던 이름이 가슴 설레는 이름이 되고 사소한 물건이 세상 어느 것보다 소중한 물건이 된다. 그 물건의 특별함은 물건 그 자체에 있지 않고 그것의 소유주로부터 나온다. 소유주에 따라 물건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마치 연예인의 애장품이 가치가 높은 것처럼 말이다. 어찌 보면 불합리하다. 물건 그 자체는 별 의미가 없지만 연예인이 소유하고 있다해서 가치가 급등한다니 말이다. 하지만 구매자는 물건 그 자체보다 그 물건에서 느낄 수 있는 무형의 가치를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폭력의 대물림

      "혼자서는 절대로 성격이 형성되지 않는다스탕달의 말이다. 성격의 기원은 우리의 말과 행동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자아는 유동체이기 때문에 이웃들이 윤곽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온전하다는 느낌을 얻으려면, 근처에 나 자신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 때로는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사회가 점점 흉흉해지고 있다."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사회가 정말로 흉흉해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언론에서 강력범죄의 보도 비율을 늘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의심을 차치하고 사람들의 폭력성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어린이 학대, 길거리 묻지마 폭행 모두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소식들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은 일관성 있다. 모두 그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몰아갔다. 나도 그들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난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마주했을 땐 ''라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뉴스를 통해 접하는 그들의 소식은 나또한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그 행동의 이유가 무엇인지 꾸준히 고민해 보았다. 내 결론은 이렇다. 그들은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일 수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감정의 억압을 경험했고 내가 다른 사람을 억누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을 때 억눌린 감정이 표출된 것이다. 하루이틀 쌓인 감정이 아니고 수십년 간 쌓인 감정들이 엉뚱한 대상에게 표출되는 것이다. 결국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그 행동의 근본적인 원인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을 옹호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적어도 폭력의 대물림이 있다는 알고 그것을 끊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고 싶다. 그들에게 시비를 가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 동시에 위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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